하나의 관문을 넘기고 나면, 다시 길을 잃는다. 올바른 길이라 판단되면, 관문이 찾아온다.
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 내 머릿 속에 쉴새 없이 드는 생각이다.
나는 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이를 통해 Growth Zone에 도달하는 과정을 즐긴다. 아래 사진은 나를 대표하는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SNS 배경화면 사진이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였고,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을 성공하였다. 성장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누구와 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Fear Zone과 Learning Zone의 1:9 내분점에 위치해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Growth Zone에 들어설 수 있는가?
운이 좋게도 나의 호기심을 갈구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호기심을 어떻게 충족하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호기심이 올바른 방향으로 정답을 향해 가는 것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 것일수도.
그래, 정답이 없다면.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 "정답"을 찾아야하는 학교를 졸업하고, "정답"이 없는 사회에서 길을 잃었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고 싶었다. 그것조차 알 수 없다면, 그들의 하루 일과와 생활상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하루에 복제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울점이 있는 멘토로 판단되는 사람들의 공통된 답변은 "글쎄, 정답과 그 정답을 위한 행동이 정해져 있을까요? 남눈치 안보고 그냥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었다.
복합적인 결론을 내려보면, 정해진 정답따윈 없다. 남의 의견을 참고하지만 최고 의사결정은 스스로 내리기에 이 과정이 타인과 다르다고 하여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만점이라는 수치가 존재하는 시험과 달리, 오늘과 내일의 결과가 상이한 세상에선 어쩌면 수많은 상위값과 하위값을 단순화해줄 꾸준함만이 답일 것이다.
그렇다. 직관을 세우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시험하면 된다. 대신 계속.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든 확신은 세상에 귀를 기울인 채 결승점을 알 수 없는 이 길을 걸어가다보면, 어느날 내가 발견할 북극성 또는 성단을 발견하는 날에 도달할 것이다. 이또한 나의 가정이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것이 과연 정말 밝게 빛나는 항성일지 고민해봐야 한다. 빛을 내는 그 본질적인 것인지, 빛의 밝음을 단지 훔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만약 항성이라고 다시 한번 확신이 든다면, 그 항성이 닿을 수 없는 무언가라도 그것이 닿을 수 있는 무엇이라고 믿어야한다. 믿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시험해야 한다. 결국 항성이 아니라 포기를 하는 순간도, 항성을 찾아 행복해하는 순간도, 이 둘을 단순화하여 평온히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멀고도 고독한 길을 즐기자.
내가 좋아하는 "싯다르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은 항상 멈출 듯 길을 떠난다. 물론 언제나 혼자는 아니다. 둘로 시작하여 혼자가 되기도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명성을 얻는 "시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혼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걷는다. 그리고 그 여정은 하나의 고전 명작으로 남았다.
혼자 북극성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을 즐기자. 가끔은 혼자이더라도, 가끔은 누군가를 마주치더라도, 가끔은 북극성이 아니라는 소문이 들리더라도. 계속 궁금해하며, 의심하며 걸어가자. 그리고 이 과정을 기록하자.
사막이 나타나더라도, 북극이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 환경에 적응해가며 결국 북극성을 찾길 고대해본다. 결국 그 북극성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을 즐겼던 과거의 나를 그리고 현재의 나를 기대해본다.
기록을 통해 걸어온 길을 복기할 수 있길.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낼 수 있길.
나의 생각을 외부에 공개하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기록을 미뤄왔다. 하지만, 이 기록이 또다른 북극성을 찾는 누군가를 이어준다면, 또다른 북극성을 알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면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과거 속 기록이 현재에 닿아 미래를 이어주길 기도하며 이만 줄여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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